벌써 한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한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느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돌아보면 역시 감사해야 할 일, 아쉬운일, 그리고 반성해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꿈을 꾸었던 해가 2008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2008년 1월 1일에 2008년 12월 31일을 상상하며 수없이 많은 꿈과 기대에 부풀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 되었습니다.

2008년 2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보스턴으로 떠났습니다. Brain Computer Interface... 저에게는 새롭고 생소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어가고 싶은 분야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업적'이라고 할만한건 없습니다. 떠나올때만 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라고 생각하고 왔었는데 막상 와서는 이룬것이 별로 없으니 서운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것을 습득하였습니다.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면 될지, 어떤 실험을 하면 될지, 실험 방법은 어떻게 할지, 어떤 것이 연구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MIT의 연구실이 재정적 문제에 부딪히면서 많은 연구가 중단되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동안 낯선 분야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와 연구 이슈를 습득한 사실만으로도 (제 욕심에는 차지 않지만)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8년 5월 10일 생에 가장 의미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한 생에 가장 소중한 날인 결혼식이었죠. 그리고 짧지만 달콤했던 신혼여행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결혼식을 꼭 그렇게 급하게 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진 한장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뿐 아니라 남아있는 사진마저 밝고 여유있어 보이는 표정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죠. 신혼여행마저 번갯불에 콩볶듯 다녀와서 도착하자마자 또 국토를 종단해야 했습니다. '정말 정신없었다'라는 기억이 가장 강렬하다니 다들 그런건지.. 참 서운하기만 합니다. 나중이라는 말이 우습지만... 그래도 나중에 여유롭게 부부만을 위한 파티도 하고 여행도 다녀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날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그 먼동네까지 오셔서 축하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분들 모두께 한분한분 인사도 드리지 못한것이 더욱 더 죄송하게 남아있습니다.
2008년 9월에는 또 하나의 행복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바다'가 생겼다는 소식인데요. 어렵고 힘든 환경인데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녀석을 보니 뿌듯하고 힘이됩니다.

2008년 가을 연구자로써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하면서 알아온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힘이되어 주었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불합리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인지도 알 수 있었지만 그 실망감 보다는 많은 여러나라의 연구자들을 알아가고 그들과 동료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말에는 조금 실망스러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인생을 너무 naive하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든 시간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바르게 살았다' 혹은 '정직하게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잔꾀'를 많이 부리며 살거나 '술수'를 부리거나 찾아가면서, 혹은 남을 이용해가며 살아올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바르게 살면 언젠가는 그만큼 답이 온다'라고 믿고 살아와었는데 유난히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건이 몇번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만큼의 인품을 기대했었는데 저의 그 '기대'마저 지나친 것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약간 흔들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믿습니다.  진인사대천명,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해야 할일을 하지 않고 속이면서 요행수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며, 정당한 노력은 언젠가는 나에게 득이되게 돌아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는 남들보다 먼저 출발하려고하고, 끼어들고 추월하려하고 양보하려고하지 않지만 그렇게 달린차가 인생의 목적지에 안전하게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번의 '주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가 달리는 동안의 승차감, 각종 사고, 승객이 느끼는 평안함, 연비, 자동차의 마모나 파손 정도, 각종 교통 단속 등 복잡한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정속으로 주행하고, 안전 규칙을 준수하며, 급출발 급제동을 하지 않으며 차를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다룰줄 아는 운전자를 좋은 운전자라고 평하는 것입니다.

'일'의 측면에서 보자면 올해는 참 게을렀습니다. 여느해보다 무척이나 게으르고 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극단적인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혼자 키워보기도 하고... 또 여느해보다 빈둥거리면서 해야할 일을 미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후회도 됩니다. 몸과 마음모두 평안함을 얻지 못하였기에 일에서도 게을렀던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할 때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불안하거나 욕심을 내거나, 걱정하고 있다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습니다. 또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다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습니다. 옛말에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경험과 깊은 성찰에서 나온 가르침이었는지를 이제사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게 될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안정된 가정과 안정된 연구환경을 마련한 후 뜻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사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이룬 한해였습니다. 2009년에는 평안함과 함께 매사를 조금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